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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작 성 일 2025-05-0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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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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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편과의 결혼생활 동안 있었던 여러 상황들을 돌아보며, 진심을 담아 이 진술서를 작성합니다. 이 진술서는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것이 아닌, 제가 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를 명확히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간의 결혼생활 속에서 감정적, 정신적 고통을 수없이 경험했고, 지금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더 이상 이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35세에 첫째 아들 김민찬(2019년 7월 5일 출생), 이어서 둘째 딸 김민지(2020년 12월 20일 출생)를 출산했습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 두 자녀를 정성과 사랑으로 양육해왔으며,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기록해왔습니다. 이 자료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육아에 전념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기록’입니다.

저는 전업주부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경제활동도 병행해온 워킹맘이었습니다. 임신 중에도 꾸준히 일을 이어갔고, 민찬이가 4개월일 무렵부터는 다시 강사로 복귀하여 육아와 일을 병행하였습니다. 그리고 5개월 때 민지 임신했습니다.
이후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한 육아 인플루언서 활동과 공동구매 사업, 무인편의점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노력과 희생 속에서도, 남편은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권수는 5,000권 중 100권도 되지 않았으며, 평소 “나는 400만 원 벌어다 주는 거면 된 거 아니냐”며 육아와 가사에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의 경력, 자격증, 시간, 체력, 감정, 애정을 쏟아부어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와중에, 남편은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 시청에 몰두한 채 자녀와의 정서적 교감을 거의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항상 신경을 쓰고, 그들의 삶을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특히 그들의 첫 번째 성장 단계인 유아기 동안, 저는 독박육아를 하면서도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매일 아침 5시 20분에 일어나 6시까지 '엄마 독서' 시간을 갖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아이들은 물론 저 자신도 성장할 수 있었으며, 함께 나누는 독서 시간은 아이들에게 지식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의 독서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들이 더 나은 세상과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하루에 최소 10권의 책을 읽어주는 것은 단순히 읽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소통, 그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사랑'과 '배려'를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매일 손편지를 쓰며,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좋은 글귀를 남기는 일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육아의 일환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기 위한 제 나름의 방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제 손편지를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교육과 학습은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성이나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병행해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독서통장을 통해 독서 습관을 들이는 등 꾸준히 교육적인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두 아이 모두 5,000권의 독서 목표를 거의 달성했으며, 이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가베, 독서지도사, 아동미술심리 자격증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를 통해 더욱 전문적인 육아를 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적합한 학습법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지자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외에도 서예 작가로서의 활동과 취미를 통해 제 자신을 돌보고, 자신감을 얻으려 했습니다. 서예는 저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었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데에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가 해온 활동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서, 그들이 저를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어떤 교육적 접근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일상과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배움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헌신하며,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할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들을 위한 사랑과 헌신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1.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남편의 무관심

민찬이를 임신했을 때, 저는 약 30kg이 증가하여 82kg에 달하는 몸으로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야 했습니다. 임산부로서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심해 매트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지만, 남편은 "나는 침대에서 자야 한다"며 끝내 혼자 침대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당시 침대는 벽에 붙어 있어 떨어질 위험도 없었지만, 제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퀸사이즈에서 3이서 자는건 저는 괜찮았는데 남편은 불편해 했습니다

민찬이의 출산 당시에도 남편은 진통 중인 제 옆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며 짜증을 냈고, 자연분만(4.2kg)의 극심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진심 어린 위로나 관심조차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게 깊은 상처로 남았으며, ‘출산 사족’으로 제 삶에 각인되었습니다. 자연분만했지만 아이도 너무 컷기도했고 혈종으로 병원에서만 2주정도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2주 산후조리원에있다가 친정집에서 1달동안 조리했습니다.

2. 돌반지와 정서적 소외

민찬이와 민지의 돌반지를 녹여 남편의 목걸이와 팔찌로 만든 것은 저에게 매우 충격적인  의미였습니다. 두 아이의 첫 생일을 기념하고, 언제나 제 곁에 두 아이가 함께 있다는 마음으로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녹여서 팔찌와 목걸이를 만들었고, 민지꺼는 이제는  제가 “이제 내 거 하자”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악세서리 안 하잖아”라는 말과는 다르게 이후로 줄곧 자신이 착용해왔습니다.

저는 단지 아이들이 어릴 때 입에 넣거나 다칠까 봐 악세서리 착용을 삼갔던 것뿐인데, 남편은 그런 제 배려와 사정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이 소유하듯 착용했습니다. 의미 있는 물건들이 제 손을 떠나 남편 소유처럼 되어버린 현실은 씁쓸함과 아쉬움을 넘어 정서적 소외감으로 다가왔습니다.

3. 아이들을 위한 정서적 양육

민찬이를 출산하고 산부인과 모자동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었던 그 순간은 제 삶에서 가장 따뜻하고 고요한 기억 중 하나입니다. 그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저는 지금까지 매일 아침 클래식 음악을 틀며 아이들의 하루를 시작하게 했고, 눈을 뜨자마자 이마에 뽀뽀하고 “사랑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자란다는 감각을 일깨우기 위한 저의 의도적인 실천이었습니다.

4. 남편의 언어폭력과 운전 중 폭언

남편은 운전 중 사소한 상황에서도 욕설을 서슴지 않았고, 아이들이 옆에 있는 상황에서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씨X”, “개XX” 등의 욕설을 내뱉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고, 이는 아이들의 언어 습관, 정서 안정, 사회적 관계 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우려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5. 육아의 실질적 책임과 자유시간의 부재

결혼 후 지금까지 저는 아이들을 단 한 번도 남편에게 온전히 맡기고 외출하거나 휴식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은 욱하는 성격 탓에 감정 기복이 심했고, 아이들과 놀이터에 간다고 해도 “물 좀 갖다 줘”, “밴드 가져와” 등의 요구로 저는 결국 쉬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면 감정이 더 불편해지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어 차라리 혼자 육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을 끊고 수년간 아이들을 혼자 데리고 다녔으며, 두 아이를 웨건에 태우고 다니며 모든 외출을 혼자 감당해왔습니다. 남편은 에버랜드에 단 5번 정도만 동행했을 뿐, 그나마도 피곤하다며 일찍 귀가하자고 해 함께 나들이를 즐긴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에버랜드에 아이들과 가는게 더 좋았습니다

6. 성적 비하와 성생활 회복의 노력

저는 2025년 3월 25일, 요실금과 질 축소 수술을 받았습니다. 내부에 혈종이 생겨 피멍이 심하게 들고, 주 2회 병원에 가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회복과 동시에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성관계 중에도 “질이 늘어났다”, “살쪘다”며 저를 비하하는 발언을 반복했고, 이는 저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해치는 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관계 회복을 위해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노력해왔습니다.

7. 경제적 기여와 가사 분담의 불균형

남편은 두 대의 차량(BMW, 카니발)을 모두 자신의 명의로 해두었지만, 카니발 구입 시 제 소나타를 처분해 1,000만 원을 보탰고, 관련 대출도 제 통장에서 상환 중입니다. 아파트 잔금 몇천만원이상도 제 기여가 있었으며, 분할임대에서 소유의 집으로 넘어갈 때 공동명의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그게 더 비싸다고 거절했습니다. 혼자 욕심이 많은거죠 차량 2대도 다 남편소유입니다. 보험을 본인이 내니 너한테도 이득이라며 모든 차량과 집을 본인 명의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언제나 본인의 경제적 기여만을 강조하며, 저는 집안일과 육아를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남편은 “400만 원 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는 태도로 일관했고, 가사나 육아의 고됨과 정신적 노동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두 아이의 성장에 있어 모든 정성과 사랑, 시간과 노동을 아낌없이 투자해왔습니다. 사진과 영상, 독서통장, 손편지, 교육계획표 하나하나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남편은 육아와 가사, 정서적 교감, 경제 분담에 있어 균형 있게 참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서적 상처와 외로움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이 진술서를 통해 그간의 삶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고통과 씁쓸함,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는 제 삶의 방향성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합니다.





결정적 사유: 2025년 5월 8일, 어버이날 사건

2025년 5월 8일 어버이날, 저는 23만 원 상당의 회를 준비해 친정집을 방문했습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술을 두 병 마신 뒤, 술기가 오른 상태에서 다소 크고 격앙된 목소리로 저희 부모님께 “이사가게 돈 좀 보내달라”며 처음으로 금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부모님은 “우리도 지금 여유가 없고, 대출을 받아서 도와줄 수는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비꼬는 말투로 “예, 앞으로 이런 말 안 꺼내겠습니다. 안 꺼낼게요”라고 말했고, 친정집을 나서면서는 저에게 “앞으로 여기 다시는 발 들이지 마라. 연 끊어라”는 폭언을 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제가 지난 수년간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연년생 두 아이를 독박 육아로 키워온 현실을 무시하고 짓밟는 언행이었습니다.

남편이 일하느라 바쁠 때 친정 부모님은 주말마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놀아주셨고, 별장에도 데려가 주셨습니다. 아이들이 3~4살 무렵엔 친정집 옆 어린이집을 다니며 친정의 돌봄에 크게 의지해왔습니다. 이런 고마움을 외면하고 “여기 다시 오지 마라”고 말한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이 가정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내내 남편은 이 주제로 집에 도착해서 잠들기 전까지 계속 말다툼을 이어갔으며, “니네 아빠 돈 꽁꽁 묶어놨다가 잘 먹고 잘 살아라”, “니네 오빠가 망나니처럼 큰 것도 그 집안 분위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저희 아버지와 가족을 비하하는 폭언까지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이런 부탁은 맨정신에 공손히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말했어야지, 술김에 “돈 달라”는 식으로 말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남편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날의 대화 내용은 모두 녹음되어 있으며, 녹음 파일을 확인하면 자신의 언행이 얼마나 무례하고 거칠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제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고, 가정의 안전과 존엄, 아이들의 안정된 양육 환경을 위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남편은 사람들 앞에서 매우 착한 척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 모습은 사라지고, 그 동안 쌓였던 힘든 감정과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어내곤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제게 매우 힘들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가 외부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 집에서 드러나며, 저는 늘 그 차이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그 모든 것이 드러났습니다. 부모님이 그 상황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남편이 외부에서 보여주던 착한 모습이 집에서 얼마나 다른지를 바로 알게 되었고,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순간, 부모님은 내가 집에서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남편이 나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명확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2025년 5월 9일
진술인: 권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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